모델링만으로는 아쉽다, 3D 아티스트가 ‘그래픽스’를 무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

서론: 3D 아티스트, 다음은 ‘엔진’을 잘 다루는 그래픽스 전문가

“3D 모델링은 정말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 분야입니다. 옷을 만들 땐 재단사가 되어야 하고, 머리카락을 심을 땐 미용사가 되어야 하죠. 빛과 피부가 만났을 때의 변화까지 계산해야 하니, 배워야 할 장르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버텍스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 텍스처 한 장에 담긴 디테일은 기계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AI 시대에도 여전히 빛나는, 우리만의 ‘장인 정신’입니다.” (저도 여전히 부족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게임을 넘어 영상, 영화 등 다양한 3D 콘텐츠 제작 환경이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면서, 우리 모델러들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작업실에서 공들여 만든 이 소중한 작품이, 막상 엔진이라는 무대에 올라갔을 때 종종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 [관련 글 읽기] 3D 모델러가 무조건 ‘언리얼 엔진’을 배워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

저 역시 수없이 겪었던 일들입니다. “분명 섭스턴스 페인터 뷰포트에서는 질감이 완벽했는데, 언리얼에만 가져가면 왠지 모르게 밋밋하고 가짜처럼 보여요.” “정말 공들여서 메타휴먼 씬을 구성했는데, 프레임이 10프레임도 안 나와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텍스처 해상도를 반으로 줄였어요.”

이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의 모델링 실력을 탓하며 자책하거나, 혹은 바쁜 프로그래머를 붙잡고 사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내가 엔진을 조금만 더 깊이 이해했다면, 남 탓 하지 않고 내 작품을 타협 없이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제가 익숙한 모델링 툴을 잠시 내려놓고 ‘그래픽스(Graphics) 기초’를 공부하기 시작한 진짜 이유입니다.


1. ‘만드는 능력(Art)’ + ‘돌아가는 원리(Tech)’ = 대체 불가

이해를 돕기 위해 요리에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3D 모델러는 최고의 식재료(Mesh, Texture)를 다듬는 [요리사]입니다. 그리고 언리얼 엔진은 그 재료를 조리해서 손님(게이머/시청자)에게 내놓는 거대한 [주방 시스템]입니다.

3D 그래픽스

우리는 보통 주방 시스템은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재료만 다듬어서 배식구에 밀어 넣기 바쁩니다. 하지만 주방의 화력(렌더링 성능)이 얼마나 센지, 조리 순서(파이프라인)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비싼 A++ 등급의 고기(하이폴리곤 모델)를 넣어도 결과물은 타거나 설익게 됩니다. 결국 손님은 “맛없다(렉 걸린다, 안 예쁘다)”고 불평하겠죠.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래픽스 파이프라인(Graphics Pipeline)’에 대한 이해입니다. 내 모델링이 데이터에서 시작해 모니터 화면에 그려지기까지의 ‘공정’을 이해하면, 문제 해결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상황: 캐릭터의 머리카락이 겹쳐질 때마다 프레임이 급격히 떨어진다.
  • 일반 모델러: “폴리곤을 줄여야 하나? 텍스처를 줄여야 하나?” (원인을 모르니 막연한 추측으로 퀄리티를 낮춤)
  • 테크니컬 모델러: “아, 이건 투명(Translucency) 재질의 오버드로우(Overdraw) 문제구나. 쉐이더 복잡도를 낮추거나, 마스킹(Masked) 방식으로 바꿔서 픽셀 연산을 줄여야겠다.” (정확한 진단으로 퀄리티 유지)

이처럼 탄탄한 [모델링 역량] 위에 [엔진 활용 능력]이 더해질 때, 여러분은 단순히 리소스(Asset)를 생산하는 작업자를 넘어,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주도하는 ‘테크니컬 모델러’로 거듭나게 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프로그래밍 언어와 공학적 지식까지 갖춘다면, TA(테크니컬 아티스트)를 넘어 전문 그래픽스 프로그래머의 영역까지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아트를 이해하는 엔지니어, 즉 시장에서 희소성 높고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는 길입니다.


2. 아티스트, 공학의 눈을 뜨다 (안목의 기술화)

많은 분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부터 합니다. “교수님, 저는 뼛속까지 문과 감성 아티스트인데요? 수학이랑 코딩은 쥐약입니다. 그런 건 공대생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문과 감성’과 ‘아티스트의 눈’이 그래픽스를 공부할 때 여러분의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프로그래머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코드를 짤 수는 있어도, “무엇이 아름다운지”, “어떤 느낌이 감성적인지” 판단하는 [디자인적 안목(Eye)]은 아티스트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언리얼 엔진 사용 사례 ‘넷마블 몬길’
  • 이 가죽 질감이 왜 리얼하지 않은지 (거칠기/Normal Map의 기술적 문제)
  • 빛이 피부에 맺힐 때 왜 촌스러운지 (Subsurface Scattering의 기술적 문제)

여러분이 가진 이 섬세한 [안목]을 엔진에게 정확히 전달하려면, 엔진의 언어(기술)를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엔진에게 막연하게 “좀 더 부드럽게 해줘”라고 말하는 대신, “러프니스(Roughness) 수치에 노이즈 텍스처를 섞어서 난반사를 유도해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을 알면, 여러분의 감각은 엔진 속에서 타협 없이 100% 구현됩니다.


3. AI 시대, 가장 높았던 ‘기술 장벽’이 무너졌다

사실 과거에 그래픽스 이론이나 쉐이더 코딩(HLSL)은 수학을 잘하는 공대생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모델러가 접근하기엔 진입 장벽이 에베레스트산처럼 높았죠. 벡터, 행렬, 내적…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팠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AI 시대]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복잡한 수식이나 코딩 문법은 이제 AI( 제미나이 ,ChatGPT, Claude )가 대신해 줍니다.

(실제 활용 예시) “제미나이, 내가 원하는 건 가장자리가 빛나는 홀로그램 재질이야. 이걸 언리얼 커스텀 노드로 짤 수 있게 코드를 줘. 그리고 각 줄이 무슨 뜻인지 아티스트 용어로 설명해 줘.”

이제 우리는 “어떻게(How) 코딩할까”를 고민하며 밤새 문법책을 뒤질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어떤(What) 비주얼을 만들 것인가”를 기획하고, “엔진이 이 코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라는 원리만 이해하면 됩니다. 가장 어려웠던 ‘기술적 장벽’을 AI가 허물어 준 것입니다. 이제 핑계 댈 수도 없습니다.


4. 모델러의 새로운 가능성: ‘테크니컬 모델러’로의 진화

업계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단순 반복 작업(리토폴로지, UV 펴기, 베이스 모델링)은 AI 툴들이 무서운 속도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저는 3D 모델러가 단순히 ‘소스 제작자’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강력한 무기인 모델링 전문성을 바탕으로, 엔진 최적화와 룩뎁(LookDev)까지 주도하는 ‘테크니컬 모델러(Technical Modeler)’ 혹은 ‘TA(테크니컬 아티스트)’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 그것이 AI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우리 아티스트들이 가장 현명하고 우아하게 진화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Q&A: 자주 묻는 질문들

Q. C++을 깊게 배워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우리는 엔진 개발자가 아닙니다. C++은 엔진이 돌아가는 논리를 이해하는 정도로만 ‘찍먹’하면 됩니다. 주력은 블루프린트와 머티리얼 노드입니다. 그 이후 학습은 목적에 따라 방향을 잡으면 되겠지요.

Q. 수학을 못해도 되나요? A. 더하기, 곱하기만 알면 됩니다.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합니다. 우리는 “곱하기를 하면 색이 어두워지고(Masking), 더하기를 하면 밝아진다(Add)”는 개념만 알면 됩니다. 일단은 그렇게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마치며: 아티스트를 위한 그래픽스, 이제 시작합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그래픽스 기초를 하나씩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어려운 공학 용어 대신, 우리가 매일 쓰는 블렌더를 예로 들거나 3D 모델러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서 말이죠.

  • “파이프라인이 뭐길래 최적화의 핵심일까?”
  • “드로우 콜(Draw Call)은 왜 줄여야 할까?”
  • “나나이트는 도대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걸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며, 내 작품을 엔진 위에서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분들은 저와 함께 알아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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